• 최종편집 2021-12-03(금)

진심을 담아 전하는 소박한 그림, 클화실

안국역 연필소묘 클화실, 정재순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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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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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갈수록 빠르고 쉽게, 나의 생활 패턴까지 스스로 파악해 생활 맞춤으로 변화해 가는 디지털 시대다. 10대들의 플랫폼이라 불리는 유튜브가 단적인 예다. 그 안에서 트렌드의 흐름은 빠르게 변하고 첫 시작에 흥미를 잡아야 한다. 짧은 영상도 넘겨 가며 더 짧게 보는 것이 유튜브 영상 소비의 패턴이다.

 

그러나 진심을 바라고,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열정을 쏟는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 사실 그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것도 불변의 법칙일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30여 년 동안 안국역 지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밀묘사 화실이 있다.

 

선 하나하나마다 공을 들이고 세밀하게 관찰해 똑같이 그려내는 연필소묘, 정밀묘사는 어쩌면 요즘 사람들의 취향과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화실의 그림 안에는 오롯이 진심만을 담은, 작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 이야기를 클화실 정재순 대표를 만나서 들어봤다.

 

클화실_1.jpg
안국역화실 클화실 내부 모습

  

오랫동안 한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클화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공부보다 그림이 좋았던 문학소녀였다.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쉽게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부모님도 일을 하시길 원하셨고 저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오빠의 권유로 어렵사리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에서도 공부보다는 그림이 더 좋았기에 대학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딱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늘 다이어리 맨 앞장에 쓰던 첫 번째 소망은 작은 화실의 주인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후 21살에 상경했다. 처음 서울이라는 도시에 와서 적잖이 문화충격과 함께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을 깨달으며 늦은 성장통을 겪었다. 그제 서야 서울에 돌아다니는 모든 젊은이들이 대학생처럼 보였다.

 

이러한 계기로 입시 미술학원에 취미반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입시가 중점이었기에 취미반이었던 나로서는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출퇴근길에 지금의 클화실처럼 시청역 지하에 위치한 화실을 발견했다.

 

마치 운명같이 그 화실이 내 눈을 통해 들어와 마음에 탁 꽂혔다. 그 안에 모습이,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보일 수 없었다. 무엇에 이끌리듯 그 화실에 다니기 시작해 3년을 함께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그 친구 둘과 합심하여 지금의 클화실을 차리게 되었다.

 

저는 지금까지도 말주변도 없고 숫기라고는 없는 사람이라 그 당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안된다, 못한다며 말리기만 했다. 그러나 화실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놓지 않았던 꿈이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주변의 만류를 모두 뿌리치고 화실을 시작했다. 함께하자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하다. 클화실을 시작한 2, 3년 후 두 친구는 각자 사정이 있어 떠나고 홀로 클화실을 맡게 되었지만, 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내 화실이었기에 그 자체에 감사하고 기뻤다.

 

02.jpg
클화실만의 정밀묘사로 그린 정재순 대표의 그림

 

그렇다면 수많은 그림 중에 왜 연필소묘, 정밀소묘인가. 클화실 그림만의 특징이라면.

 

학창시절부터 똑같이 그려내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인기만화영화의 캐릭터를 똑 닮게 그리면 친구들이 자기도 그려달라고 줄을 설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그것밖에 모르기도 하고, 또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정밀묘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회화나 유화를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안 해본 것도 아니다. 한때 유명했던 화가인 밥 로스가 만든 유화방식이 큰 성황을 일었던 적이 있었다. 다른 유화방식 보다 쉽고 빠르게, 또 화려하고 멋있게 그려낼 수 있는 기법이었기에 수강생도 많이 찾았고 그림도 잘 팔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이제 건조하기 위해 밖에 내놓았는데 어느 손님이 와서 3만원에 사갈 정도였다. 하지만 제가 그렸어도,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니라는 생각에 그림이 어디 가서 걸리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이후로도 다른 영역도 시도했지만, 가장 클화실다운 그림은 역시 연필소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과 지우개, 도화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연필소묘다. 게다가 연필은 어렸을 때부터 늘 사용한 익숙한 도구이지 않은가. 그 어느 것보다 재료 준비도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또 수정이 용이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림 주문이 들어오면 가슴이 설렌다. ‘의뢰한 사진보다 더 잘 그려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대에 충족시켜드릴 마음에 들뜨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 언젠가는 한 기관에서 일 년 동안 전 직원 생일 이벤트로 초상화를 그려드렸던 적이 있다. 생일을 맞이한 직원에게 본인이든 가족이든 원하는 사람으로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인물을 완성 시켜가면서도 이 이벤트의 주인공보다 스스로가 행복한 노동자가 되어 기쁘게 매월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선물 받았던 직원들 역시 매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특별한 선물 받으면서 인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내 분위기도 화합할 수 있었다며 매우 만족한 모습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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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순 대표의 그림을 선물했던 가수 김창완의 팬클럽

 

지금까지 클화실은 대표님의 가치관과 꿈을 고스란히 담은 공간인 것 같다.

 

언젠가 그림을 배우던 한 수강생이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클화실은 밖에서 보기에는 작고 별 볼일 없는 지하의 작은 화실일 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고스란히 실현시킨 꿈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각자가 살고 싶었던 꿈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나는 주변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이루었다.

 

진심으로 원했던 일이기에 화실의 성장과 무방하게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뜯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오직 돈을 위해서 이 화실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이 좋지는 않지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오히려 그래도 그림을 가져간 것을 보니 마음에는 들었나보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돈을 안주는 것보다 그림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더 기분이 나쁘다. 그만큼 그림의 가격보다 그 만족이 내 인생에도, 클화실에서도 더 중시하는 바이다.

 

지금 할 수 없으면, 언제 할 수 있으리.’ 정재순 대표는 이 문구를 명함에 새길 만큼 늘 본인을 움직이게 하는 한 마디라고 전했다. 수줍고 용기가 없어 늘 뒤로 물러나 있던 소녀는 클화실과 함께 성장하고 변화했다. 그러나 그 마음속의 마음, 진심과 진심을 캐내는 신중함은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클화실의 그림에는 연필이라는 단조로운 소재 속에 선 하나마다 더욱 세심하고 정밀한 진심만을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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